수능후기 (보관용)
| [2020수능후기] 삼수생이 말하는 수능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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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oreahjp | 날짜 : 19-12-07 02:20 | 조회 : 1475 | ||
  나의 세 번째 수능은 한 순간에 끝이 났다. 성적표를 받아본 지금, 더 잘 볼 수 있었을 텐데라는 회의감도, 이만하면 잘 본거야 라는 만족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라는 희미한 생각만이 머릿 속을 맴돈다. 나는 삼수생이다. 나의 지난 3년은 마닳과 함께했다. 내가 수험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 힘이 되어준 마닳 후기에 내 이야기가 실려 후배님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고 동기부여가 된다면 좋겠다. 나는 해외의 고등학교를 다니다 한국 고등학교에 편입했다. 나는 해외고등학교 졸업생도 아니었고, 한국 고등학교에서는 3학기만을 이수했다. 그렇기에 해외특별전형에도, 일반전형에도 지원 제약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국 교육과정에 맞추어 국어도, 수학도, 과학도 전부 다시 공부해야만 했고, 당연한 결과로 나는 재수를 하게 되었다. 나는 독서실에서 독학 재수를 했다. 의욕에 불타면서 시작했던 내 재수는 결론부터 말하면 실패로 끝났다. 나는 내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를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피곤하면 졸고, 아프면 쉬고, 우울할 때에는 유튜브에 들어가서 노래를 듣거나 했다. 내게 주어진 질 낮은 자유는 스스로를 타락시켰고, 한 번 시작된 방황은 눈덩이가 불어나는 듯이 커져서 결국에는 나를 집어 삼켰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이혼을 핑계로 공부를 그만두었다. 사실은 이미 그 전부터 제대로 된 공부는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내 방황의 원인을 주변 환경에서만 찾으려고 했다. 그런 치졸하고 썪어빠진 정신상태로 나는 두 번째 수능을 치뤘다. 기대는 없었다. 그저 주어진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가고, 시간이 나를 데려가는 곳으로 발 맞추어 가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작년 12월 5일, 수능 성적표를 받고 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쉬지 않고 울었다.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수능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울 수 있음에 놀랐다. 의사라는 꿈에 홀려, 실제로는 대단한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세상 가장 힘든 수험생인 척 살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나는 내 친구들을, 가족을,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를 기만했었다. 세 번째 수능을 준비했다. 날 믿지 못하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돈을 빌려 기숙학원에 등록했다. 나는 1년 동안 수능에 목숨을 걸었다.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고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부했다. 누군가가 본다면 비웃을 정도로 남루한 몰골로 비참하게 공부했다. 산다는 것이 이토록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능이라는 집념에 사로잡힌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단순히 수능 시험의 망령이었을 뿐이었다. 룸메 친구들과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밥 먹듯이 주고 받았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수능이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때때로 우리를 급습했다. 매일 매일이, 일분 일초가 고통스러웠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시간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수능 한 달 전부터 나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소화불량과 빈혈을 동반한 불면증에 나는 신경 정신과를 찾았다. 하지만 구토를 하면서도 나는 단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내 세상은 이미 종이와 활자 안에만 존재했다. 활발하고 웃기 좋아하던 내 모습은 거울 속에도, 스스로의 마음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피폐하고 메마른 날카로운 인간만이 있었다. 수능은 나를 바꿨다. 세 번째 수능은 이윽고 찾아왔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금새 나를 지나쳐갔다. 수능이 끝나고 고사장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왔다. 차가운 계절이었다. 이것은 작년과 같았다. 못 푼 문제가 더러 있었다. 잘 본 시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작년과 같았다. 그러나 수능에 대해서 어떤 미련도 남아있지가 않았다. 이것만큼은 작년과 달랐다. 왜? 왜? 그 이유를 끝없이 고민했다. 불안했다. 무의식적으로 내 입에서 1년만 더... 라는 끔찍한 말이 튀어 나올까봐. 그러다 미련이 남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지난 1년 중 어느 하루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하루가 없었다. 후회가 남는 하루가 없었다. 내가 오늘 본 이 시험이 내 한계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수험생으로서 닿을 수 있는 나의 최고점이라고 생각했다.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22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일하게 꿈꾸었던 것. 나는 나의 지난 세월에 약속한다.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될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수험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수능을 끝내는 것은 후회 없는 결과가 아닌 미련 없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고3도, 재수생도, n수생도, 정말 힘들고 버거운 수험생활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가장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가장 힘을 들여서 그 길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반드시 2020년 겨울에 웃는 사람은 당신이 될 것이다. |
